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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AL ARCHITECTURE/column

건축설계 뜯어보기



건축에 필요한 설계 과정은 크게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기획서 형식의 개요와 스케치, 투시도 등의 시각적 자료로 1차적인 판단의 근거를 마련하는 계획설계,

계획단계에서 확정된 자료들을 토대로 디자인을 발전시키는 중간설계,

확정된 디자인을 토대로 견적 및 시공의 근간이 되는 디테일을 갖추는 실시설계 단계가 그것입니다.


흔히 말하는 허가방 도면은 이 중 중간설계단계의 결과물을 말합니다. 평면도와 입면도, 한 두 장의 단면도와 창호도 정도로 구성되기 때문에 실질적인 비교견적이나 시공에 필요한 시방, 디테일한 조건 등은 확인이 어려울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이러한 도면을 토대로한 건축은 시공자의 자의적인 건축이 될 수 밖에 없는 것이죠.


설계의 출발이 되는 계획설계는 디자인 컨셉이나 전체적인 규모검토가 이루어지는 단계입니다.

건축사사무소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건축주와의 최초 미팅을 토대로 제안서 형태의 계획안이 마련되고, 건축주는 이 과정을 통해 건축사사무소와의 계약여부를 확정짓습니다. 물론, 계획안 마련 역시 용역의 일종이기에 소정의 비용이 청구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상당수 건축주들은 그간의 포트폴리오와 전체적인 설계용역비를 기준으로 선 계약 후 설계를 진행하곤 하는데, 이때는 비용지급방식에 대한 충분한 협의와 검토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과거의 포트폴리오가 마음에 들었다해도 정작 내 설계는 마음에 드는 결과가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설계과정에서 소통이나 협업에 어려움을 느끼고 중간에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설계비의 지급방식도 건축과 마찬가지로 단계별로 나누는 것이 좋습니다. 예를들면 계약금/계획설계 후/중간설계 후/설계도서납품 후/준공 후 등으로 말입니다. 그래야 중간에 포기하는 상황이 발생하더라도 비용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계획설계단계는 비용적인 측면 뿐 아니라 건축주의 선택과 역할이 가장 중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보다 만족도 높은 설계안을 도출하기 위해 건축주는 그간 생각해왔던 집에 대한 생각을 잘 정리해서 전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협의과정에서 말로 하는 것보다는 문서화된 형태가 좋습니다. 건축규모는 물론, 공간의 용도 및 사용방식, 향후 변경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한 예측, 좋아하는 재료나 건물의 층고까지 디테일하면 할수록 좋습니다. 또한, 이 단계에서 자신이 가용할 수 있는 자금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오가야 건축비를 반영한 도면작업이 이뤄질 수 있습니다. 

오래된 구옥을 철거하고 신축하는 경우라면 설계 전 경계측량을 미리 진행해 내 땅에 대한 경계를 명확히 한 후 설계를 진행하는 것도 생각해봐야 합니다. 옛 집들이 붙어 있는 구도심의 경우 이웃 집이 경계를 넘어 내 땅에 자리하는 경우도 종종 있는데, 이미 자리한 집을 밀어내고 건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디테일한 사항에 대해 건축사와 협의가 이루어지고 관련 내용의 전달이 원활하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구체적인 디자인 플랜을 짜보지 않은 상황이라면 내가 선택한 건축사의 창의력과 디자인 능력을 믿고 완전히 맡겨보는 것도 좋습니다. 어설픈 고집은 건축사의 의지와 책임감을 저하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간설계단계로 넘어간다면 건축주가 해야할 것들은 상당 수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재료의 선정입니다. 내외부 마감재는 물론, 최근 계속 강화되고 있는 단열성능에 대해서도 건축사와의 충분한 협의를 통해 최적의 단열/마감 방식을 선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사용할 가구의 수와 배치를 고려하며 각 실의 크기와 형태를 확정한다면 보다 꼭 맞는 내 집을 구현할 수 있습니다.


실시설계는 말 그대로 완성된 도면을 만드는 작업입니다. 이 과정에서는 전기/통신 및 설비/소방 도면 등에 건축사와의 협의 사항이 잘 반영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벽배수 세면기를 설치할 생각인데 배수배관이 바닥으로 되어 있다거나, 꼭 필요한 콘센트 위치가 누락되어 있다거나 하는 것들을 체크합니다. 구조 및 전기/설비 도면은 건축설계사무소에서도 협력사를 통해 작업이 이뤄지는 것이 대부분이기에 커뮤니케이션 과정에서 누락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방 하나를 AV룸으로 활용한다거나, 계단실에 빔프로젝트를 설치하는 등 일반적이지 않은 사항을 인테리어적으로 풀고자 할 경우, 이 단계에서 설계에 미리 반영해두는 것이 좋습니다. 실시설계도면은 건축시공의 기준이 되는 최종 도면이기 때문입니다.





단계별로 풀어놓으면 건축주가 챙겨야할 것도 많고, 비전문가 입장에서 어렵게 느껴지는 일도 많아 보입니다만 나와 내 가족이 살 집에 대한 자유로운 상상과 좋아하는 것들의 취합과정을 즐길 수만 있다면 실무적인 어려운 점은 건축사의 도움으로 충분히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건축설계는 전문가의 손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결국 그 건축물에서 삶을 영위할 사람은 바로 건축주 자신과 가족임을 명심하고 적극적 의사게진과 협의로 설계과정을 풀어가는 것이 좋은 설계, 좋은 건축의 시작이 아닌가 싶습니다.